Scarlatti K.365

12월 13, 2010 댓글 남기기

최근 며칠동안 꽂혀서 하루에도 몇십번씩 듣게된 곡. 묘하게 연이은 364, 365, 366이 다 좋고, 특히 저한테는 365가 이 앤솔로지의 베스트인듯. 곡의 퀄리티나 연주의 퀄리티, 연주자와의 정합성 면에서.

스칼랏티는 음악사에서 좀 묘한 위치의 작곡가가 아닌가 싶습니다. 물론 도메니코 스칼랏티 말씀이지요. 음악사 책을 보면서 익힌 스칼랏티와 음반을 통해 접하는 스칼랏티는 좀 위치가 다르지요 ?! 전혀 메이저 작곡가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피아니스트들의 스칼랏티 애호는 정말 각별하기만 한거 같습니다. 마치 많은 소프라노들이 헨델의 아리아집을 순전히 자신의 노래하는 기쁨을 맛보기 위해서 내고, 역시 적지않은 지휘자들이 지휘 자체를 즐기기위해 리햐르트 슈트라우스의 관현악곡을 그렇게 애호하듯이 말이지요.

이 앤솔로지를 비교적 꼼꼼히, 여러번 들으면서 어떤 착상을 하나 얻게된게 저한테는 수확이라면 수확. 곡들이 전부 키보드를 위한 ‘소나타’라는 제목을 달고는 있지만, 전부가 단악장인 것도 그렇고, 내용도 자체완결을 지향하기보다는 ‘에피소딕’한 구성을 갖고 있는 곡들이 태반 이상인걸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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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Little VOD

11월 3, 2010 댓글 남기기

오른쪽 위의 메뉴 살아납니다. 언제까지가 될지는 알 수 없으나…

My LIttle V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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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ethoven – Symphonies _ Abbado

9월 11, 2010 댓글 남기기


아바도의 베에토벤 교향곡을 지금까지 클래시카에서 방영한 영상물 녹화를 주로 보다가, DVD를 구해 다시 보면서 상당히 놀라운 걸 발견했네요. 출시된 지가 어마어마하게 오래된 타이틀인데 이걸 처음 알게된게 좀 당황스럴 정도… 컨서트DVD 타이틀에 관한한 상당히 민감한 안테나를 장착한 저한테, 어째서 이런 얘기가 포착이 되지 않았을까요 ?! 노바디 캐어스? 아마도 그런듯.

타이틀의 메뉴에 보면 각 DVD마다 “Conductor’s Angle”이란 스페셜메뉴가 있는데, 3, 5, 6, 7에만 이게 붙어있습니다. 바로 지휘자에게 고정된 카메라 앵글”만” 보여주는 메뉴이지요. 즉, 3, 5, 6, 7 교향곡의 경우 40여분의 연주시간 전부를 지휘자를 비추는 카메라앵글만을 보여주는 메뉴입니다. 마빌러스…. 교향곡 전체를 통짜로 이해하는데 아마 스코어보다 더 도움이 되는거 아닌가 싶군요.

저는 평소 예술의 전당에 가서 컨서트를 볼 경우(요샌 마에스트로 정 말고는 갈일이 거의 없습니다만) G섹션에 가서 앉습니다. 바로 가장 저렴한 합창석이지요. 가디너, 호그우드, 정명훈, 성시연의 연주를 전부 지휘자의 정면에서 보고 왔군요 ! 이 좌석이 가장 싼 좌석, 거의 마지막까지 표를 구할 수 있는 좌석이라는게, 저한테는 안믿기는 사실입니다. 몇년간 전혀 변하지 않더군요.

전에부터 컨서트물을 보면서 교향곡의 경우 지휘자만 비춰주는 타이틀이 도대체 왜 없는지가 답답했었는데, 드디어 뒤늦게사 아바도의 베에토벤 연주로 이 염원을 풀었습니다. 컨서트홀이 아닌 제방에서 감상하면서 처음 한 경험이라, 정말 색다르고 유익하군요. 백명의 단원 (아, 이번 경우는 50여명), 1000여명의 관중 앞의 ‘절대 고독’ 속에서 베에토벤과 소통하는 듯한 아바도의 지휘모습은 정말 인상적입니다. 카라얀, 번스타인의 연주도 통상 카메라 6-7대가 동원되는걸로 아는데, 편집 전 각 카메라의 데이타가 따로 보관되고 있는지가, 많이 궁금해지는군요 ! 저로서는 이색적인 경험이라기보다, 가장 바람직한 교향곡 감상의 형태라고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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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ndelssohn – Symphony No.4 _ Dohnany

9월 5, 2010 댓글 남기기

Mendelssohn – Symphony No.4 _ Dohnany

지휘자가 생각해 보면 참으로 많은데, 제가 좋아하는 지휘자들이 실력이나 능력에 걸맞지 않는 명성에, 훨씬 떨어지는 지휘자들 보다 못한 대우를 받고 있는걸 보면, 한편으로는 “그럴수 밖에…” 싶다가도, 저라도 나서서 좀 어필을 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

최상급으로 알려진 지휘자가 아니면 주요 레퍼토리의 베스트로 꼽히기가 정말 쉽지 않은 일인데, 제 경우 멘델스존의 교향곡 3, 4는 단연 도흐나니와 비인필의 연주입니다. 페터막이나 토스카니니가 “레코도게이쥬츠”의 교향곡 명반으로 자주 꼽히고, 이후 국내 평론가 몇몇 분이 ‘환상의 명연’으로 소개한 이후, 정말 도저히 이해가 안갈 정도로 이 연주들이 음악관련 사이트의 소위 교향곡 명반리스트에 약방의 감초처럼 등장하고 있지만, 저로서는 요해가 힘든 상황이라 할 밖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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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인간형 : Furtwangler – Toscanini

8월 27, 2010 댓글 남기기

밑에 폴리니에 관해 쓰면서 제가 30여년간을 폴리니빠로 지내고 있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만, 같은 기간 동안 결국 이해하기를 포기한 것 중 하나가 토스카니니의 연주, 혹은 그의 연주에 대한 열광입니다. 처음 음악 들을 때 거의 비슷하겠지만 SP, 혹은 모노 녹음에 대한 ‘혐오감’을 극복하는게 쉽지 않지요. LP나 카셋트를 들으면서 도리없이 귀에 들어오는 판이 튀는 잡음, 히스노이즈 때문에 ‘아, 나중에 돈 좀 벌면 반드시 스튜디오 마스터 테입을 구해 들으리라’ 하는 다짐을 열심히 하던, 하이파이 스테레오 LP의 사운드조차 성이 안차던 그때 50년대 이전 연주는 음악하고 상관없는 ‘복고취향’으로 치부하고는 아예 몇년간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푸르트뱅글러의 에로이카를 듣게 되었지요. 물론 그전에 30-40년대 연주를 아예 안들은건 물론 아니고 발터, 토스카니니, 멩겔베르크 등의 연주는 드문드문 들을 기회가 있었지만, 이 연주들이 저한테는 별다른 감흥을 준 바가 없었기 때문데 굳이 찾아들을 노력을 할 필요가 없었다는게 아마 사실에 근접한 얘기일 겁니다. 푸르트뱅글러의 연주는, 다르더군요. 이전에 듣던 30, 40년대의 다른 연주들과는, 달라도 너무나 다르더군요.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의 연주회는 다른 ‘일반’ 연주회와는 달리, 당대 최고의 녹음기술이 투입된 녹음들이므로 아마 음질의 효과도 완전히 부인하기는 힘들겠지요. 아무튼 그의 베에토벤 교향곡 전집이 막 20줄에 접어들던 저한테 끼친 총체적인 영향은 ‘呪縛’이라는 표현이 아마 들어맞는 표현이겠습니다.

아, 이유가 있었구나 싶어 다시금 토스카니니, 클렘페러, 발터, 크나퍼츠부쉬, 멩겔베르크, 크라우스 등을 이번에는 집요하게 찾아 듣기 시작했습니다. 만, 결과는 푸르트뱅글러가 원앤온리. 다른 지휘자들은 전에 들으며 가졌던 인상에서 거의 한발짝도 더 내디뎌지질 않더군요.

이후 음악을 들어오면서, 주위에 음악을 듣는 분들과 교우하면서, 나이를 들면서 하나씩 느끼면서 이해하게 되는 사실은, 절대적인 가치가 따로 있는게 아니라 결국은 나와의 상관관계, 나의 가치관이 상대를 결정한다는, 비교적 소박한 결론입디다.

최근에 본 영화 중 토스카니니 말년의 대화를 그의 아들이 기록한 녹음을 토대로 만든 “Toscanini in his own words”란 영화가 있습니다. 일체의 인터뷰나 전기를 인정하지 않았던 토스카니니였기에, 아마 그의 장남인 월터가 부친의 역사적인 기록이 필요하다고 느껴서 녹음한 내용이었던것 같고, 제 생각엔 가감없는 토스카니니의 대화가 맞으리라고 생각되더군요. 이 영화는 그에 대한 제 견해가 아마 적어도 저한테는 틀림이 없었다는 점을 확인시켜 준 점에서 유익한 영화였네요. 그가 연주하는 음악이 저한테 어필하지 못하는 이유를 직접 그의 입을 통해 들은 셈인데, 그에게는 오로지 음악만이 절대적이고 유일한 가치였다는게 아마 그 이유인듯 합니다.

어떤 책인지는 지금 자세히 기억이 나지 않는데, 바로 이점을 언급한 책이 생각나는군요. 모세가 시나이산에서 하느님께 십계명을 받는 그 장면을 보게 된 어떤 이가, 그 불길과 우뢰와 구름이 어우러진 광경이 이 세상에서 본 어떤 것보다 아름답더란 감상만을 가졌다고 합시다. 도대체 모세와 하나님의 소통이 자리할 곳은 어디일까요 ? 인류역사상 유례없을, 이 우주적인 순간에, 오직 그 스펙터클에 눈과 귀를 뺏긴다… 얼마나 초라한 얘기인지요.

위에 제목을 두 인간형이라고 붙인게 푸르트뱅글러와 토스카니니를 한번 비교해보기 위함이었으므로, 두 분이 어떻게 다른 지를 생각나는 대로 몇가지 짚어보기로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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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zart – Violin Sonatas _ Perlman, Barenboim

8월 25, 2010 2개의 댓글

나이 들어서 새로운 곡을 favorites로 편입시키기가, 아마 경험하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요 ?! 이미 좋아하는 곡들, 확인된 곡들이 그 자리를 찾기까지 얼마나 까다롭고 까탈스러운 제 기준을 통과해야 하는지를 생각해보면, 정말 보통 일이 아닙니다 ! 모짜르트의 바이올린 소나타는 우리 세대에서 보통 그렇듯이, 하스킬과 그루미요(보통 이 순서지요)의 필립스반, 중에서도 단조 곡들이 저한테도 익숙하고, 가끔씩 생각나면 꺼내 듣는 정도였지요.

최근 아이팟에 넣고 듣는 음악이 펄만과 바렌보임이 연주한 이 바이올린 소나타 전집과 스캇 로스가 연주한 스칼랏티의 쳄발로 곡들인데, 모짜르트의 바이올린 소나타에서 들을수록, 새록새록 깊은 맛을 느낍니다. 저도 싫증을 쉽게 내는 편이라 어떤 곡을 지속해서, 오랜 기간을 듣는 경우는 상당히 드문 경우에 속하거든요. 한 두어달을 들으면서도 바꾸지 않고 계속 듣게 만드는, 그것도 새로운 면모를 계속 발견하게 해주는 작품, 연주는, 제게 정말 오래된 기억에 속하는 경험이군요.

특이하게도 곡이 너무 좋아서 함께 넣고 다니는 무터나 골드버그의 연주에 대해서는 같은 얘기를 하기가 힘듭니다. 즉, 펄만과 바렌보임의 연주가 그만큼 탁월한거겠지요.

어떤 점에서 그렇게 탁월한가… 당대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 피아니스트인 두 양반의 기교나 해석, 음악성에 대해서 따로 언급할 점은 없겠지요. 조율된 피아노가 아닌, 손가락으로 짚어서 잡아야 하는 음계를 어떻게 그렇게 문자그대로 한소절 이완된 곳 없이 정밀하게 잡는지, 운궁 각도를 어떻게 모든 음표에 적응해서 그렇게 균일하고 균형잡힌 소노리티를 이뤄내는지, 제가 특별히 좋아하는 점이기도 하지만, 어떻게 그렇게 비브라토를 절제하면서 정갈하고 감칠맛 있는 음색을 뽑아내는지… 열거하자면 참으로 많겠지마는 ;

제게 놀랍게 다가온 이들 듀오의 탁월한 점은 “業報”에서 해방된 듯한 (free from karma) 느낌입니다 ! ‘도대체… 먼 소리…’ 당연한 반응이겠지만, 특히 펄만의 모짜르트 연주는 제게는 그의 다른 연주들과는 또 다른 면모를 보여주는 듯 합니다. 어쩌면 이점은 연주하고 있는 곡에서 비롯되었을 가능성이 크겠지요. 아마 음악사상 유일한 karma-free 작곡가는 모짜르트 밖에 없을테니까요. 문제는 곡이 그렇다고 과연 모든 연주가 그걸 드러내 줄 수가 있는가 일텐데, 저는 그럴 가능성은 아마 상당히 희박하다고 봅니다.

거의 모든 음악은 작곡가의 심상의 표출이고, 일정한 음악적인 성과를 거둔 곡의 최종 메시지는 그의 영혼지수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한때 唯識불교 관련 책들을 보면서 건진 것 중 하나가 6식을 넘어선 7식, 8식의 발견이 대승불교의 핵심이라는 것이고, 팔만대장경이 8식(alaya식)에 대한 거대한 주석이라고 하는 분까지 있을 정도로 불교에서 중요한 개념으로 압니다. 저는 좌선삼매를 통하지 않고 맨정신으로, 감각을 통해서 이 8식과 접할 수 있는 수단이 아마도 유일하게 음악이라고 생각합니다(탄트라나 요가를 수단으로 꼽는 분들도 있고, 아마 맞을 가능성도 많겠지만요).

음악사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는 곡들을, 음악사가들이나 음악을 이해하는 분들이 대개 암묵적인 동의는 하면서도 막상 “왜”에 대한 설명에는 궁한 경우를 흔히 봅니다만, 저는 명쾌하게 바로 위의 역할을 해주는 극소수의 곡들이 바로 음악사의 정점을 차지하고 있는 곡들이라고 이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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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opin – Preludes _ Pollini

8월 24, 2010 댓글 남기기

저를 아는 분들이 모두 잘 알고 계시는 사실이지만, 저는 못말리는 폴리니빠 입니다. 벌써 한 30년을 이러고 있군요 !! 제게 있어서 폴리니는 연주가 반열이 아니라 창조적인 아티스트들과 같은 차원이지요. “완벽”을 경험시켜주는, 저한테는 아마 유일한 연주가라 그렇습니다. 이건 좋은 연주가들이, 훌륭한 작품을 연주하면서 가끔씩 일어나는 ‘non plus ultra’의 순간과는 차이가 있다고 봅니다.

예술, 특히 음악은 비일상의 차원을 일상에서 추체험/재경험 하고자 하는 시도라고 저는 봅니다만, 연주가 일상적일 때는 곡이 아무리 차원을 달리하는 곡이라 하더라도 감상자가 그걸 감지하기는 어려워 지겠지요. 일상에서 비일상의 차원을, 그것도 반복적으로 전달한다는 불가능한 작업을, 저는 폴리니는, 지속적으로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70년대 중후반에 폴리니의 연주로 나온 프로코피에프 소나타 7번, 베에토벤 후기소나타집, 쇼팽의 연습곡, 전주곡, 폴로네이즈, 모짜르트 협주곡 19, 23, 슈베르트 방랑자 환상곡, 슈만 소나타 1번, 환상곡, 브라암스 협주곡 2번, 바르톡 협주곡 1,2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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