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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ethoven _ Harnoncourt

피델리오를 보다가 서곡부터, ‘아, 알농쿨…’ 전에 교향곡들 들을 때의 경끼증세가 또다시 반복되는가 싶어 제대로 안보고 말았는데, 옆집에 들려 댓글달다가 도대체 왜 이게 나한테 접수가 안되는가를 한번 생각해 봤습니다.

저한테 비교적 자주 들리는 여–회원과도 사실은 그의 베에토벤 교향곡에 대해 몇번 얘기를 나눌 기회가 있기도 했지만 ‘아, 좋더구만. 다시 자세히 좀 들어봐요 !’란 핀잔에 별로 맘에 안들더란 대꾸외에 꼭 집어서 반론을 못폈던 기억도 있고해서, 오늘 다시 3,5,9 등 몇 곡을 다시 들어보면서 왜 저한테 접수가 안되는지 몇가지 이유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일단 제 과거경험을 비교해보다가 떠오른게, 바로 마젤/빈필의 시벨리우스 전곡을 듣고 느꼈던 바로 그 생경함. 항상 그렇듯이, 이 연주를 명연주로 꼽는 분들도 꽤 있긴 합디다만, 과연 그 2번 4번 5번 연주가 시벨리우스 맞는지요 ?!

‘천재 마젤이, ‘악보 그대로’, 그것도 빈필하고 연주했는데 어쩌라고 ?’ 고클같은면 당장 태클 들어오겠지만, 우리끼리니까…

제 감상은 시벨리우스 악보에서 건져올린 라흐마니노프의 세계.

아르농쿠르의 경우는 베에토벤의 악보에서 건져낸 헨델의 교향곡 이라고나 할까요.

애초에 찾아듣게된 동기가 각 리뷰들에 아바도, 래틀, 진만, 바렌보임등의 전집과 비교하면서 ‘베에토벤 해석의 결정판’, ‘델마버젼 보다 설득력있는 고증’ 등등, 최근 보기 힘든 정도의 초호화판 리뷰라 찾아 들어봤지만, 저한테는 심각한 글쎄요…

우선 아르농쿠르의 연주에서 받아들이기 힘든게 그가 구가하고 있는 다이나믹의 자유입니다. 그의 트레이드마크이기도 하지만, 포르테는 포르티씨모, 포르티씨모는 포르테포르티씨모, 베에토벤이 많이 쓰는 스포르짠도는 스포르짠디씨모(?).
마치 첼리에게 알레그로가 안단테, 안단테가 아다지오, 아다지오가 렌토이듯이 말이지요…

다음으로 위와 연관되는 얘기지만 다이나믹과 함께 템포 밀고당기기를 상당히 즐기는듯 합니다. 스트럭쳐 보다는 텍스쳐. 좀더 부연하자면, 이 당김이 내는 효과가 몬테베르디나 헨델에서는 대리석같은 질감을 부여함으로써 윤기를 보태주지만, 베에토벤에서는 리듬을 불안정하게 함으로써 골격을 훼손하는 결과로 생각되거든요.

결국 베에토벤 교향곡을 어떻게 보는가가 어떤 연주를 ‘좋다’고 말하는가와 깊은 상관관계를 가질텐데, 시각적으로 비유해보자면 베에토벤 교향곡의 힘은 바로 렘브란트의 그림들처럼 구도와 구조, 명암에서 나오는걸로 저는 생각하는데, 아르농쿠르(그의 연주를 좋아하는 분들 포함)는 루벤스의 그림들처럼 색채와 광휘, 질감에 베에토벤의 힘이 있다고 생각하는 입장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듭니다. 물론 렘브란트도 텍스쳐의 대가이고 루벤스에게도 스트럭쳐가 빠질수 없겠지만, 상대적으로 말씀입니다.

바로 짐작하시겠지만, 제게는 렘브란트가 루벤스보다 아득하게 우월한 예술가입니다만, 아마 미술사가 중에서도 루벤스를 렘브란트 보다 위대한 화가로 보는 입장도 있기는 한 모냥입디다. 어쩌면 ‘그림’ 수준에서 루벤스가 나은 화가일지 모르겠지만, 제 짐작에 렘브란트는 ‘그림’ 이상을 추구했다는 편견을 제가 갖고 있어서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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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Beethoven, Mus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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